심리학이란 도대체 무엇이며, 왜 문화 심리학을 연구하는가?'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. 그러나 문화 심리학과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이미 분트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.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문화 심리학이 분트로부터 역사 적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. 심리학이 자연과학에 버금가는 과학이 되고자 했던 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사조였으며, 인간을 엄밀한 과학적 방법으로 이해하려는 열망은 그 자체로 정당하고 타당한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. 그러나 과학적 접근법만이 인간 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인 것은 아니다. 이러한 문제의식이 분트로 하여 금 문화심리학(Volkerpsychology)을 저술하게 한 동기였으며, 오늘날의 문화 심리학도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.
에너지 보존, 열전도, 화학 반응 등의 현상은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만 갖추면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나타난다. 따라서 동일한 연구 방법이 가능하며, 전세계를 통합하는 하나의 물리 학, 하나의 화학도 가능하다. 그러나 심리학의 연구 대상인 인간은 자연과학의 연구 대상과 는 현저히 다르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은 자연과학과 같은 객관적인 방법만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19세기적 열망으로 인해 자신을 일반인들로부터 소외시키는 위험을 자초해 왔다. 심리학이 자연과학처럼 보편적인 과학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하나의 심리학이 가능하며, 오직 그러한 심리학만이 참된 심리학이라는 가정을 뒷받침해 왔다. 21세기를 눈앞 에 둔 이 시점에서도 그러한 19세기적 이상을 고수한다는 것은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. 문화 심리학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 심리학이 추구해 온 과학주의적 편향을 교정하는 것이다.
즉, 심리학이라는 저울 위에 '자연과학적 보편성'이 라는 추 외에 '문화적 특수성'이라는 추를 첨가함으로써 인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제 대로 된 저울을 만들자는 것이다.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제 민족을 하나의 심리학으로 이해하려는 헛된 욕심은 버려야 한다. 때문에 문화 심리학의 일차적인 과제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 라는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심리학의 학문적 진정성을 회복하는 것이다. 심리학의 진정성은 각 문화의 고유성을 담지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 심리학들이 심리학 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을 통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할 것이다. 따라서 문화 심리학은 단순히 심리학의 하위 분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.
문화 심리학은 아직 수평선 저 너머 아스라한 서광으로만 존재한다. 그 서광의 한 가운데 에 고대의 문화 심리학이 자리잡고 있다. 문화 심리학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 다. 심리학의 다른 하위 분야들처럼 체계적으로 잘 정비된 연구 방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 며, 많은 동역자들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. 손만 뻗으면 딸 수 있는 달콤한 과실이 주렁 주렁 달려 있는 풍요의 정원이 아니라 잡초만 무성한 황량한 돌밭에 지나지 않는다. 그러나 잘 포장된 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가기보다는 없는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즐기 는 강한 개척 정신의 소유자들에게는 황무지야 말로 훌륭한 도전과 극복의 대상일 것이다.
이제 우리는 깃발을 꽂았다!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견인불발의 개 척정신, 건곤일척의 배짱을 지닌 젊은 학도들을 문화 심리학이라는 황무지로 초대한다. 언젠 가는 '1998년 한국 최초의 문화 심리 전공 개설'이라는 사건이 심리학의 역사를 장식할 그 날이 올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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